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베네수엘라전을 봤습니다.
결과는 0-0 무승부.
그런데 스코어보다 더 답답했던 건 경기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전반 45분 동안 슈팅이 단 1개에 그칠 정도로 베네수엘라의 압박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경기를 보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던 표현은 딱 하나였습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동네축구 같다.”

각자 축구는 하는데, 팀으로 축구를 한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습니다.
◆ 11명이 뛰는데 왜 각자 축구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이번 경기 대한민국은 손흥민과 오현규를 투톱으로 세운 4-4-2로 시작했습니다. 김민수-황인범-박진섭-이강인이 중원에 배치됐고, 조현택-김민재-이한범-설영우가 포백을 구성했습니다.

문제는 포메이션이 아니었습니다.
공을 잡은 선수가 다음 플레이를 결정하는 속도가 너무 느렸습니다.
패스를 받을 때 이미 상대 선수가 붙어 있고, 공을 받은 다음 주변을 보고, 그다음 패스할 곳을 찾습니다. 그러니 패스가 나갈 때쯤이면 베네수엘라 선수들이 길목을 전부 막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전반에는 베네수엘라의 압박에 막혀 공격 전개 자체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게 단순히 패스 미스 몇 번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선수와 선수 사이의 연결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움직이면 누가 그 공간을 활용하고, 공이 이쪽으로 들어가면 다음 선수가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같은 약속된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개인 능력에 기대게 됩니다.
그리고 경기가 안 풀리니까 점점 더 각자 해결하려는 모습으로 흘러갔습니다.
◆ 손흥민에게 가면 끊기고, 이강인은 활로를 찾기 어려웠다

"손흥민이 공을 잡았을 때 상대 수비에 어떤 위협도 주지 못했습니다. 피지컬로 버텨내며 드리블로 활로를 뚫기는커녕, 수비와의 1대1 경합 자체를 이겨내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기동력 저하는 물론이고 기술적인 정교함마저 크게 무뎌져, 에이징 커브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실망스러운 경기력이었습니다."
이강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강인이 공을 잡으면 뭔가 만들어낼 능력은 분명히 있는데, 전반적으로 공격 구조 자체가 답답하니 이강인 역시 제대로 된 활로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후반 들어 조금 더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패스를 연결하고 공격 방향을 만드는 장면들이 나왔지만, 이것 역시 팀의 공격 시스템이 이강인을 살렸다기보다 이강인이 움직이면서 길을 찾아가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 김민재가 직접 치고 올라가는 장면, 저는 오히려 불안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의아했던 장면은 김민재였습니다.

센터백인 김민재가 공을 가지고 직접 앞으로 치고 올라가는 장면이 반복됐는데요.
물론 후방에서 상대 압박을 깨기 위해 센터백이 전진 드리블을 하는 것 자체는 전술적으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플레이입니다.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는 제가 보기에는 “팀의 전술적인 전진”이라기보다 경기가 안 풀리니까 김민재가 직접 해결하려고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동네축구처럼 느껴졌습니다.
게임이 안 풀리니까,
“아, 그냥 내가 가지고 올라갈게.”
이런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실제로 경기 후 김민재가 교체된 뒤 모레노 감독과 대화하는 모습과 감정적인 장면도 현장에서 포착됐습니다. 다만 그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선수의 의도까지 외부에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 후반 막판 교체 선수들의 활약, 그것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후반 막판 새로운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그나마 조금씩 좋은 장면이 만들어졌습니다.
활동량도 올라갔고 공격적으로 움직이면서 몇 차례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만 보고 새로 들어간 선수들이 기존 선수들보다 훨씬 좋았다고 평가하기에는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이미 경기 막판이었고 베네수엘라 역시 체력적으로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결국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여주려면 특정 리그 출신이냐 아니냐보다는 강한 압박 속에서 얼마나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이고, 공을 연결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이번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부족해 보였던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 0-0이라 다행이었던 경기
이번 경기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은 사실 대한민국이 골을 넣지 못했다는 것보다 실점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네수엘라에도 골대를 맞히는 장면이 있었고, 경기 내용상 대한민국이 편안하게 상대를 통제하면서 만든 0-0은 아니었습니다.
즉,
“수비를 잘해서 0-0”이라기보다는 “어쨌든 안 먹어서 0-0”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결정력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경기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제는 세대교체를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 아닌가
저는 이번 경기를 보면서 대표팀의 세대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손흥민, 김민재, 황인범, 이재성처럼 오랫동안 대표팀의 중심을 맡아온 선수들의 이름값과 커리어를 부정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선수들이 지금까지 해준 게 워낙 많습니다.
하지만 대표팀을 앞으로 몇 년 더 끌고 가야 한다면 지금의 이름을 유지하는 것과 새로운 대표팀을 만드는 것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둬야 하는지는 이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나이가 많으니까 빼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대표팀에서 현재 요구하는 축구와 맞는가, 압박 속에서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젊은 선수들과 함께 새로운 팀의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손흥민, 이재성, 황인범, 김민재 같은 기존 핵심 선수들까지 포함해서 대표팀의 주전 자리를 사실상 원점에서 경쟁시키는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모레노 감독에게 필요한 건 포메이션보다 ‘팀’이다

모레노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도 4-4-2를 사용했습니다. 베네수엘라전까지 부임 후 3경기 성적은 1승 1무 1패가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중요한 건 4-4-2냐 4-2-3-1이냐가 아닌 것 같습니다.
11명이 같은 생각으로 움직이는 축구가 먼저입니다.
손흥민이 혼자 해결하고, 이강인이 혼자 탈압박하고, 김민재가 답답해서 직접 치고 올라가는 축구라면 좋은 선수를 아무리 많이 넣어도 결국 개인전의 연속입니다.
제가 이번 베네수엘라전에서 가장 실망했던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 선수는 있는데 팀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0-0이라는 스코어보다 이게 훨씬 걱정스럽습니다.
다음 경기에서는 누가 선발로 나오느냐보다 이 선수들이 정말 하나의 팀처럼 움직일 수 있느냐, 저는 그걸 먼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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